비상금 통장, 정말 필요한가요

지난해 7월, 냉장고 고장으로 수리비 180만 원이 나왔다. 그때 통장을 봤는데 여유 자금이 40만 원 정도였다.

결국 신용카드로 긁었고, 그달부터 월급의 10%를 따로 모으기 시작했다. 3개월 뒤 비상금 통장이 500만 원이 됐을 때 느낀 감정은 ‘안심’이라기보다 ‘답답함’이었다.

이 돈이 정말 필요한지, 아니면 다른 곳에 굴려야 하는 건 아닌지 자꾸만 궁금했다.

비상금 통장 vs 여유 자금을 투자에 돌리기

비상금 통장의 정의부터 명확히 하자면, 예상 밖의 지출에 대비하기 위해 언제든 쓸 수 있도록 묶지 않은 돈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월급의 3개월분에서 6개월분을 목표로 잡는다. 내 경우 월급이 280만 원이니 비상금 목표는 840만 원에서 1,680만 원 사이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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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drosah Sunnah / unsplash

비상금 통장의 장점은 명확하다. 응급 상황에서 즉시 대응할 수 있다는 것. 냉장고 고장처럼 예측 불가능한 지출이 생길 때 신용카드나 대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심리적 안정감도 크다. 통장에 500만 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밤에 잠을 더 잘 잔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볼 점이 있다. 지난 2년간 내가 비상금에서 꺼낸 돈이 얼마나 되는가.

냉장고 고장은 결국 신용카드로 처리했으니 실제로는 거의 없다. 그럼 이 500만 원이 은행 적금에서 연 약 3% 정도의 이자를 받고 있다면, 매달 1만 5천 원 정도의 이자 수익이 생긴다는 뜻이다.

나쁘지 않지만, 같은 금액을 S&P500 ETF에 넣었다면 지난 1년간 평균 수익률이 약 12% 정도였다. 60만 원 정도를 놓친 셈이다.

실제로 얼마나 필요한가

비상금의 적정 규모는 사람마다 다르다. 회사원인 나는 월급이 정기적으로 들어오고, 큰 병이나 사고가 없는 한 예상 밖의 지출이 많지 않다. 반면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라면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수입이 불규칙하니 비상금이 더 많이 필요하다.

작년 말, 직장 동료와 비상금 얘기를 했다. 그 친구는 비상금을 1,200만 원 정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부모님이 갑자기 입원한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병원비로 800만 원이 나갔고, 그 이후로 비상금을 늘렸다고 했다. 같은 금액이라도 경험에 따라 필요성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현실적인 타협점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비상금은 필요하지만, ‘무조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 나는 월급 3개월분인 840만 원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그 이상의 여유 자금은 ETF나 적금에 돌리기로 했다.

비상금 통장은 이자 수익보다는 ‘보험’으로 생각하는 게 맞다. 보험료를 낸다고 생각하면, 연 3% 정도의 이자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그 이상의 돈을 묶어두는 것은 기회비용을 감수하는 것이다.

지난 3월, 비상금을 840만 원으로 정리했다. 초과분 200만 원을 미국 채권 ETF에 옮겼는데, 지난 2개월간 약 2만 원의 수익이 났다. 작은 금액이지만, 이렇게 하나씩 움직이는 게 재테크다. 비상금은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1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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